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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16.07.28 06:47

친정같은 교회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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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 외가는 딸 여섯에 끄트머리 아들 둘이 있습니다. 어릴 적 이모들을 만나면 외삼촌은 본 책이고, 이모들은 모두 부록이라고 놀렸던 기억이 납니다. 아들 하나를 소원하셨지만, 거푸 여섯 딸만 낳으신 외할머니의 맘고생은 오죽했을까요. 큰이모, 둘째 이모가 시집가서 살림을 차렸을 때 막내 외삼촌은 아직 동네 아이들과 마당에서 구슬치기, 딱지치기하던 코흘리개 꼬맹이였습니다. 어린 외삼촌 입장에서는 이미 시집간 누이들이 그리 살가운 피붙이들은 아니었을 것입니다.

 

어머니가 치익치익 기름을 둘러 무언가를 볶으시고, 평소 아껴 잘 쓰시지 않는 귀한 참기름을 둘러 나물들을 척척 무쳐내시면 온 집안은 고소한 냄새가 가득했겠지요. 뒷마당에 묻어 놓은 김장독을 열어 김치들을 살펴보시고, 문간을 몇 번이고 드나드시다가는 하릴없이 바깥을 내다보고 계시면 며칠 지나지 않아 틀림없이 누이들이 찾아왔습니다. 누이들은 그렇게 어머니가 준비한 맛있는 음식들을 실컷 먹고, 빈손으로 왔다가 손이 모자라 들고 가지 못할 만큼 어머니가 준비해 준 보따리 여러 바리를 들고 가곤 했습니다. 외삼촌은 그게 마뜩잖아 뒤에서 따라 가면서 소리를 지르곤 했다 합니다.

“야, 이것들아! 우리 것 다 가져가네. 놓고 가라”

 

어린아이에게 친정이, 친정엄마라는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 이해가 될 리가 있을까요. 낯선 집, 낯선 사람들 속에 그들의 식구가 되어, 끼니마다 없는 살림에 밥을 짓고 반찬 만들어 그들을 먹이고, 정작 자기는 눈칫밥으로 끼니를 대신하던 시절. 그 누이들에게 친정엄마만큼 그리운 존재가 또 있었을까요.

 

배우자의 죽음을 스트레스 지수 100으로 상정하고 우리 삶 속에서 겪는 일들을 그 기준에 비추어 측정한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(T.Homes & M.Masusu). 이 연구에 따르면 식습관의 변화가 15, 직업 변경이 36, 출산이 40, 결혼이 50, 이혼이 73이었습니다. 이를 기준으로 선교사들의 스트레스 지수를 측정해 보았는데, 첫 임기의 선교사들은 식습관 변화, 거주지 변화, 사회적 행동 제약, 언어 습득, 새로운 관계와 업무 등의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만나게 되는데, 그 스트레스 지수는 무려 400에 이른다고 합니다. 즉 배우자의 죽음의 4배에 해당하는 스트레스를 선교지에서의 첫해에 받게 된다는 것이지요.

 

선교사들이 지치지 않고, 주님 주신 사명 가운데 계속해서 그 길을 달려갈 수 있는 길은, 파송 교회, 후원 교회의 평가와 매서운 비판의 눈이 아니라 친정엄마와 같은 따뜻한 사랑입니다. 힘든 일 있을 때 소매로 눈물 훔치며 전화로 하소연도 할 수 있고, 빈손으로 찾아왔다가 한아름 엄마의 사랑을 안고 돌아갈 수 있는 곳. 그곳이 선교사님들이 느끼는 우리 교회였으면 좋겠습니다. 각 셀에 연결된 선교사님들과 후원 선교단체들을 기억하시고 꼭 기도해 주세요. 그리고 짧은 메일, 작은 선물 하나라도 선교사님들께 전해드리세요. 그 작은 관심과 격려가 선교사님들께는 힘든 사역을 이겨낼 힘이 된답니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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